1    ▪ 영광의 40년, 위대한 도전

2020. 12. 3.(목)

 

제목


한국체육대학교 학술교양총서 제5권 『반공주의와 한국문학』발간  유임하 교수, 반공 텍스트의 기원과 발생 문제 짚은 기념비적 저작

억압과 금기를 극복해 나가는 한국문학의 구체적 사례 집약


문의

담당자: 최하연 주무관

전  화: 02- 410- 6968

부  서: 산학협력본부 대외협력팀

주  소: (05541) 서울시 송파구 양재대로 1239 한국체육대학교



저자는 동국대 국문과에서 「한국소설의 분단인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 한국문학과 반공주의의 연관과 경계지점의 민족지 등, 해방 이후 문학과 북한문학을 연구해온 중견학자다. 2005년부터 최근까지의 연구성과 19편을 모아 ‘반공주의와 한국문학’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이 책은 한국체육대학교 학술교양총서의 다섯 번째 결실이다. 우리대학의 교양교직과정부 교수로 재직하는 저자는 그간 󰡔분단현실과 서사적 상상력󰡕(1998), 󰡔기억의 심연- 한국소설과 분단의 현상학󰡕(2002), 󰡔한국소설과 분단이야기󰡕(2006), 󰡔반공주의와 한국문학의 근대적 동학󰡕(공저, 2008- 2009), 󰡔북한의 문화정전, 총서 ‘불멸의 력사’를 읽는다󰡕(공저, 2009), 󰡔북한의 우리문학사 인식󰡕(공저, 2014) 등의 많은 저작을 출간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해방 75주년,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은 국문학계의 최전선에 놓여 있다. 분단과 6.25라는 문학적 명제를 학문적 의제로 삼아온 저자는 문학작품과 증언록, 수기 등으로부터 ‘민족지적 글쓰기’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반공 텍스트의 기원과 발생 문제를 짚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특징이다. 「정체성의 우화」 「반공텍스트의 기원과 유통」은 수기집을 비롯한 다양한 반공텍스트의 등장과 반공담론의 연관, 미디어정치의 양상을 짚어본 경우다. 


이 책은 한국문학에 가해진 반공주의라는 이념의 실체와 동원된 흔적들을 따라가며 냉전의 담론효과, 냉전 기억의 형성, 반공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억압과 공포, 작가의 자기검열, 가혹한 현실 속에서 지속시키는 문학의 온정적 휴머니즘, 만인을 위한 글쓰기로 전환하는 면모, 6.25라는 문학적 명제의 정신사적 가치, 이근영의 사례처럼 월북 문인의 작품세계를 통시적으로 조망하며 남북한문학의 공분모를 모색하기도 한다. 또한 저자는, 김승옥의 「야행」를 환유적으로 읽으며 60년대의 시대적 맥락을 짚거나 문인간첩단사건을 제재로 한 이호철의 장편 󰡔문󰡕에서 남용된 사법권력과 분단의 폐쇄성을 비판하는 사례를 통해서 분단의 억압과 금기를 극복해 나가는 한국문학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찾아내고 있다. 


 

2    ▪ 영광의 40년, 위대한 도전

책의 특징은 텍스트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반공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의 연관 속에 분단과 전쟁, 60- 70년대,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걸쳐 있는 탈냉전의 기조 속에 놓인 한국문학의 변천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논의되는 키워드에서도 이 점은 잘 확인된다. 이데올로기와의 연관, 텍스트의 담론 효과, 국가와 개인의 관계, 역사라는 공적 기억과 문화적 기억, 개인의 기억 등의 층위 문제, 서사의 내셔널한 차원인 민족서사, 국가서사, 분단서사 이후의 새로운 양상인 ‘기억서사’ 등의 문제, 해금조치 30주년을 맞아 짚어본 근대문학사 복원의 문제, 친일문제의 해법 문제, 유교적 국가주의, 민족정전의 소설적 전유 문제 등등이 전통적인 텍스트중심주의적 연구에서 벗어나 뜨거운 학술적 의제들을 다루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이밖에도 개화기 교과서에서 국가와 신민 양성이라는 교육기획의 한계를 살피며 반공주의와 국가주의의 오래된 기원을 살피거나 민족문화 정전의 하나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어떻게 호출되어 근대소설에서 재서사화되었는지에 주목했다. 이밖에도 친일 문제의 새로운 시야를 연 홍성원의 󰡔그러나󰡕 읽기나 ‘기억서사’의 문학적 사례와 역사소설 속 역사적 기억의 서사화 양상, 문학/문화지리학의 학제적 가능성과 한계 등을 짚어보고 있다. 



본문에서


이 책은 반공주의와 연관된 한국문학의 족적을 탐색하고자 한 그간의 연구성과를 한데 모았다. 책은 크게 다섯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3부까지는 반공주의와 직결된 한국문학과 문화적 실천을 통시적으로 살핀 글을 모았다. 책 뒤에 부기한 원문 출처는 별반 의미가 없을 만큼 편제에 따라 묶고 부족한 내용은 깁고 보완했다. 1부에서 3부에 걸쳐 있는 글의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된다. 출처를 명기한 원문과 제목이 달라진 경우 표현만이 아니라 기술방향과 내용도 그에 준할 만큼 전면적인 보완을 거쳤다. 4- 5부에서는 논리와 문장 표현을 다듬는 데 주력했다.


1부(반공 이념과 문화의 정체성)에서는 해방직후부터 전쟁 이후까지 반공주의와 민족지적 글쓰기의 경향(「정체성의 우화- 반공 증언수기집과 냉전기억 만들기」, 「반공 텍스트의 기원과 유통」)과 함께, 반공주의의 맥락에서 순수문학의 실체(「순수의 이데올로기적 기반」), 반공주의 이데올로기 효과와 필화사건, 김승옥의 소설을 중심으로 자기검열의 문화 기제(「공포증과 마음의 검열관」 등)를 다루었다. 2부(전쟁과 문학과 인간)는 최태응과 김동리, 박경리 등의 소설을 통해 6.25전쟁과 직결된 파장과 인식의 단면들을 살피는 한편 한국소설사에서 6.25가 어떤 문학적 명제로 인식되어왔는지를 통시적으로 조감한 글을 한데 모았다. 또한, 3부(분단의 억압과 금기를 넘어서)에서는 드물게도 남과 북에서 동시에 활동한 농촌소설 작가 이근영의 소설세계를 살피면서 분단체제하에서 근대소설 분화의 가능성을 타진했고, 김승옥의 「야행」과 이호철의 장편 『문』을 통해 분단체제의 억압과 금기의 장벽을 넘어서려는 유의미한 소설적 성취에 주목했다. 특히 「야행」을 ‘꼼꼼히 읽기’를 통해 당대 규율사회의 억압을 넘어선 자기구원을 환유한 텍스트로 보고자 했다. 「기억의 봉인 풀기」와 「해금조치 30년과 근대문학사의 복원」은 세계냉전체제 해체와 금기를 넘어선 문학적 문화적 효과를 진단한 글이다. 


4부(근대의 문화적 횡단)는 근대 초기의 문학과 문화 현상에 대한 문제와 관련된 글들을 묶었다. 개화기 독본인 『소학독본』과 『유몽휘편』을 중심으로 한 애국계몽기 교육개혁의 기획과 그 실천, 

 

3    ▪ 영광의 40년, 위대한 도전

민족의 문화정전인 『삼국유사』의 호명과 소설적 전유, 홍성원의 장편 『그러나』에서 탐색된 식민지 기억의 동아시아적 해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언뜻 근대 초기의 문화와 문학적 실천에 관한 글들이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한 듯하나 확장된 시야에서 보면 ‘구국(救國)을 위한 신민(臣民) 양성’이 초래한 과도한 국가주의의 연원을 짐작하는 한편, 국권 상실 속에 문화 기억의 원천으로 『삼국유사』가 조명받은 내력을 짚어보려 했다. 개화기로 소급시킨 문제의식의 근저에는 외래 사상과 주의의 틈입을 가능하게 한 정치적 사회경제적 조건들을 살필 수 있었고 민족 문화정전으로 호명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설화의 소설적 전유 현상을 통해 통시적인 조감을 시도했다. 『그러나』는 드물게 동아시아에 걸쳐 있는 일제 식민지 기억의 상처와 치유 문제에 주목한 장편으로 반일/친일의 윤리적 단죄 대신 어떤 기억 화해가 필요한지를 해석했다. /마지막 5부(기억과 공간)는 탈냉전 이후 등장한 기억서사의 의의(「망각의 정치, 기억의 윤리」), 기억산업과 역사소설의 관계(「기억의 귀환과 역사의 분화」), 문화지리학 또는 문학지리학의 성과와 전망(「지리공간의 지정학적 성찰) 등, 시야 확장과 학제적 가능성을 탐문한 글들을 묶었다. 「망각의 정치, 기억의 윤리」는 앞의 글과 논지가 다소 중복되나 편제상 내용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머리말에서) 


책의 제명을 ‘반공주의와 한국문학’이라 이름 붙인 것은 분단서사에서 시작된 그간의 문제의식을 좀더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함이었다. 해방 이후 분단문학에서 시작된 학문적 관심사는 근대문학의 전통을 가늠하며 그 태생으로부터 사회주의, 제국주의, 반공주의 등등의 주의와 사상이 가진 놀라운 전파력과 대중들의 흡입력을 조금씩 심화시켜 지금에 이르렀다. 반공주의를 대중에게 확산시킨 민족지적 글쓰기에 착목한 것이나 반공주의의 제도적 실정력과 위력을 확인시켜준 ‘분지 필화사건’, 그 여파로 생겨난 작가의 자기검열 문제 등으로 이어진 연구의 행로에서 분단과 전쟁의 엄청난 사회적 문화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남북사회 전반에 구조화된 이데올로기적 금기 때문이었음을 확인하면서였다. 북한문학에 대한 연구도 그런 연유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민족과 국가, 사회와 집단과 개인에 걸쳐 있는 공공 기억과 그 문화적 소산을 살피고자 했다. 그같은 연구의 조건과 방향을 충족시키려면 문학 연구가 지향해온 문헌중심주의라는 오래된 관습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당연하게도 시와 소설 텍스트에 한정되는 논의방식을 넘어 에세이, 수기집, 회상기 등 활자화된 다양한 텍스트들에 담긴 정치 사회적 함의도 고려했다. (머리말에서)


『반란과 민족의 각오』에 담긴 문인들의 증언 수기는 여순사건을 통해 반란군 세력과 좌익세력 모두를 소련의 사주와 북한의 선전, 기만에 홀린 타자들로 규정하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논조에 기대면, 반란군과 좌익세력은 호명된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민족의 본심에서 이탈한 자들로서 무지와 마술에 홀려 이탈한 범죄자들이다. 


반공 수기의 담론은 반소반북의 냉전 구도를 타파하려는 이질적인 사회 내부의 세력들을 추문화함으로써 그 활동과 사회적 영향력을 차단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이들의 담론이 이데올로기적 사회적 정치적 분단을 포괄하면서 발휘하는 효과는 미디어 정치를 방불케 한다. 민족/민족주의 담론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당대까지도 다양하게 존재해온 정파들과 사회성원들의 성향을 ‘민족/반민족’이라는 구도로 재편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여순사건은 지리적 분단과 이데올로기적 분단이 중첩된 분단국가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회적 분단의 계기였으나, 신생국가인 대한민국은 이 

 

4    ▪ 영광의 40년, 위대한 도전

위기를 극복하는 가정에서 반공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근대국가의 정교한 체계를 가동하는 호기로 삼았다.

(본문 38쪽에서)


반공 텍스트가 산출되는 시기는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1년부터 1953년 휴전에 이르는 전시 기간에 집중된다. 대표적인 텍스트 하나가 서울 수복 직후에 기획되어 피난지 부산에서 국제보도연맹의 이름으로 간행된『적화삼삭구인집』(1951)이다. 텍스트는 서울 수복 직후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시기에, 서울에 잔류하여 부역행위를 했던 문인들의 체험 수기를 수록한 책자이다.


책의 서문은 ‘타공의 선봉장’이었던 사상검사 오제도가 썼다. 서문에서 그는 “공산당의 전략전술을 결백청렴한 우리 백의민족이 당초에 인식치 못한 것은 역사적인 사회환경에서 볼 때 무리가 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그는 혼란한 사회질서와 낮은 생활수준 때문에 민심이 떠도는 사회상에 편승한 것이 적화사상이라고 주장하며, “본래의 야망을 채울려 했었으나 결국 6.25침공을 계기로 적마(赤魔)의 생태는 적나라하게 폭로”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18세기적인 공포와 폭력의 적치 3개월간에 예민한 감수성과 추단력을 갖인 지성인들이 민족과 함께 신음과 황홀의 아슬아슬한 생명의 절정에서 직접 체험하고 목도한 것을 탁월한 묘사로서 일관한 본서”는 “하나의 산 역사로써” “새로이 감염되기 쉽고 때와 곳을 따라 방법을 달리하여 침투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적 공산당을 배격하는 데로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고 글을 맺고 있다. 

(본문, 56- 57쪽에서)



1950년대에 전쟁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반공주의의 검열기제에 저촉되면 받게 될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1950년대는 전사회적인 충격과 엄청난 피해 때문에 전쟁의 전모에 대한 해명은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전쟁은 휴전으로 매듭지어졌기 때문에 작가들은 가급적 전쟁의 전모에 대한 발언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판단이 유보된 자리에는 반쪽만의 이해, 편향된 이해가 자리잡았다. 전시체제에서 위력을 발휘한 반공주의의 실정력은 자기검열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1965년 6월에 일어난 남정현의 필화사건은 이데올로기적 금압에 따른 실정력의 여파가 얼마나 구체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필화사건은 제도화된 검열의 실재를 확인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북한의 선전선동에 활용된 사례였다. 작가들에게는 제도화된 반공주의가 법률적으로 어떤 위험성을 낳을지를 충분히 각인시켜 놓았다. 법적 제도적 위험성 인식은 작가들에게 자기검열이 작동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50년대야말로 자신들에게 허용되었던 ‘정치 이외의 자유’에 대한 맹목성에 골몰한 까닭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본문 82쪽에서)



2. ‘금제의 힘’과 공포증 

해방 이후 ‘반공주의’는 ‘자명한 이데올로기적 전제’에 기초하여 한 국사회의 성원들에게 어떤 회의나 일탈도 금기시하는 국가 규율장치 로 작동해 왔다. 반공주의는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책의 하나로 ‘반공’ 그 자체를 보편화하고 영구화한다. 이데올로기의 보편화 과정에 서 일어난 의미의 재구성은 먼저 우리/타자(또는 적/우리)라는, 민족이 아닌 사상의 종족성을 구성하는 정치적 

 

5    ▪ 영광의 40년, 위대한 도전

기획이었다. ‘우리’라는 범주는 타 자에 대한 규정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타자의 관계는 좌우정치의 헤게모니 투쟁과정에서 형성된 진영화이지만, 우파 진영은 이 분할을 선/악의 구도로 몰아가며 “특정한 장소와 시간의 특정한 가치와 이해가 모든 인류의 가치와 이해로 투사”시키면서 절대화를 시도한다. 6.25전 쟁의 발발과 함께 냉전적 반공논의의 일반화는 국가의 안녕, 인류의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서 공산주의의 절멸을 외치는 한편, 전쟁을 6.25라는 발발 시간대, 인공치하의 서울이라는 장소, 잔류문인들의 부역 체험에서 증언된 공포와 불안을 덧보태며 증식한다. 여기에서 발견되는 것은 특정 한 시점과 특정한 장소, 문인이라는 특수한 집단의 시선이다. 이 시선은 텅빈 시간과 내용을 북한의 점령정책하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억압 과 불안과 공포들로 채우고 적대적인 타자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런 다음, 최종의 심급은 전쟁을 주도한 ‘북한 공산도배’들을 ‘인류 공동의 적’으로 규정한다. 일반화를 거쳐 확장된 인류의 차원이란 논리의 보편화가 다다른 절대적 가치의 최종지점이다. 인류의 차원에서 공산주의자 는 축출하고 절멸시켜야 하고 그런 다음에야 세계 평화가 구축될 수 있다는 배타적인 전제가 매끄러운 당위적 명제로 바뀐다. 

(본문 112- 113쪽에서)



「생명연습」에서 기억되는 유년의 시간대는 “국민학교 육학년 때, 사변이 있던 그 다음해 이른 봄”, ‘전쟁중 여수’(1권, 「건」, 20쪽)이다. 「건」의 시간 배경 역시 “6학년” 때이므로 1951년 무렵이다.「생명연습」이 위태로운 성장을 반영한 가족로망스의 내밀함을 문제 삼고 있다면, 「건」은 빨치산 내습으로 불타버린 도시를 무대 삼아 사회주의 사상과 이념분자들의 순수를 모독하며 세상의 위악을 모방하며 성장하는 자의 이야기이다. 


무엇보다도 「건」에는 여순사건의 흔적들이 파편처럼 산재한다. 세상의 위악을 모방하며 성장하는 작품에는 자전성의 출처를 가진 요소들 이 변형되거나 압축되며, 대체를 통해 맥락이 바뀐 채로 텍스트 전면에 드러난다.「생명연습」에서는 누락되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빨치산의 시 신을 처리하는 노역자로 바뀌어 등장하고, 어린 주인공은 관에다가 힘껏 돌팔매질 하는 위악한 아동으로 등장한다. 「건」에는 「생명연습」에서 보여주었던 가족로망스의 구도가 성장하는 개인의 외디푸스적 도정에서 세계의 위악성에 감염된 존재의 위악함을 한껏 부각시킨 형국으로 바 뀌어 있다. 위악하고 고단한 성장체험에서 어린 주인공은 이데올로기란 “꽁꽁 뭉친 그런 신념덩어리”(54쪽)가 아니라 “벽돌이 쌓여 있는 더미의 강렬한 색깔”이 가진 “무시무시한 의지”이며, “적갈색과 자주색이 엉켜 서 꺼끌꺼끌한 촉감의 피부를 가진 괴물”(54쪽)이라는 점을 절감한다. 이 러한 세계인식은 오로지 세계의 위악함을 모방하며 자신의 순수를 상징 했던 윤희누나를 범하려는 형의 부정한 모의에 가담함으로써 세계의 위 악과 공모하도록 만든다. 「건」의 어린 주인공은 여순사건의 트라우마를 한껏 부풀리며 세계의 위악함을 모방하고자 한다. 또한 그 위악함과 공모하여 동심의 세계와 순수의 영역을 짓밟으며 이와 결별하려는 ‘성장의 서사’의 면모를 보여주고자 한다. 

(본문, 134- 135쪽에서)


지금까지 「흥남철수」는 그다지 깊이 있게 검토되지 못한 채 전쟁의 비극성을 포착한 정물화로만 논의되어 왔다. 하지만, 작품에는 순수문학론이 전쟁이라는 국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서가 숨겨져 있다. 작품의 전쟁서사는 전쟁이라는 정치의 공간에서 문학의 ‘순수한’ 위상을 확보하려는 의도를 내장하고 있지만, 작중인물들의 행동과 내면은 박철의 휴머니즘과 그의 

 

6    ▪ 영광의 40년, 위대한 도전

인도를 받으면서 체제 선택과 남쪽을 향한 소망을 품고 운명공동체인 민족과 국가로 귀속된다. 또한 이 시선은 남한중심주의의 시각과 함께 국민화를 주관하는 국가이성에 근접해 있다.


이렇게 보면 「흥남철수」는 그의 50년대 중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질감을 가진 문제적 텍스트임을 알게 해준다. 이 작품은 전쟁의 참화에서 비켜갈 수 없는 당대 지식인의 불안한 내면을 그려낸 여러 소품들과는 달리, 전쟁과 국가, 민족과 휴머니즘 문제를 두루 함축하고 있어서 ‘전쟁의 현실과 대면한 순수문학론자의 작품화된 선언문’라고 보아도 과히 틀리지 않는다. 작품에는 문학의 순수를 주창해온 문학 이념이 전쟁이라는 상황과 대면하면서 점령지역 북한 민간인들을 민족공동체 안에 포섭하여 ‘자유대한’의 국민으로 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흥남철수」의 이런 특징은 그의 남한중심주의적 시각과 국민국가의 틀 안에 놓인 분명한 사례이자, 순수문학의 이념을 전쟁의 현실에 적용시켜 구축한 반공보수주의자의 텍스트임을 일러준다. 

(본문 195쪽에서)


전쟁의 자취가 사라지는 50년대 후반에 이르러 박경리의 소설세계는 현실의 복합성을 담아내는 필요성이 대두한다. 작가의 장편 양식 모색도 이때 시도되었다. 작가는 단편양식이 가진 장점을 활용하기보다 먼저 애정관계에 바탕을 두고 전쟁피해자의 현재를 서사화하는 방식을 취했다. 『애가』에서 보듯이, 전쟁체험의 직접성을 간접화하고 서사의 폭을 확대시켜 전쟁의 상처를 가진 여성인물을 포착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인물을 시적 상태에서 꺼내 산문적 현실에서 살아가도록 만드는 데는 실패한다. 여성인물들이 사회적으로 생동하는 활동영역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의 하나이다. 


하지만 『표류도』는 초기 단편이 가진 자전적 요소와 회상, 사유하는 내면성 대신, 미혼모 직업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전후사회의 안팎을 조감하고 통찰하는 새로운 면모를 제시한다. 작품은 다방이라는 공간을 거점으로 삼아 사회를 조망하며 사회악의 고발하고,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전쟁의 피해자인 여성의 전락과 불행을 대면하도록 만들었다.


박경리의 초기소설에서 전쟁체험과 관련해서 가장 인상적인 문학적 전환의 면모와 가치 하나는 ‘1인의 고통을 만인의 고통에 대한 글쓰기’로 전환시켰다는 데 있다. 초기단편이 가진 고발과 저항의 몸짓이 자전적 요소와 분리되지 않는 처절한 육성을 담고 있으나 『애가』를 거쳐 사회적 넓이를 확보하고 『표류도』에서 만인의 불행과 함께하는 면모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 문학적 전환과 인식은 전후사회의 조망과 통찰을 통해 도달한 지평이며 훗날 60년대의 수많은 중단편들과 장편들, 그리고 『시장과 전장』을 거쳐 『토지』에 이르는 문학적 가치이자 주된 동력이 되었다. 초기단편에서 『표류도』에 이르는 박경리문학의 전환적 흐름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1인의 상처와 고통에서 만인의 고통과 상처에 관한 이야기’로 바꾼 데 있다. 그런 맥락에서 『표류도』는 50년대 박경리 소설의 정점이자 60년대에 이르러 문학적 역량을 발휘하는 또다른 원천 하나였다.

(본문 217- 218쪽에서)


한국문학에서 6.25라는 명제는 분단과 전쟁의 거대한 아이러니에 맞서야 하는 주체적 개인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의 하나다. 이 점은 앞서 언급했듯, 식민지콤플렉스에 비견되는 정신사적 투쟁을 동반한다. 분단으로 인한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분단을 넘어선 작가들의 상상력은 분단과 

 

7    ▪ 영광의 40년, 위대한 도전

전쟁을 초래한 근인(近因)과 원인(遠因)에 대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시야와 숙고를 필요로 한다. 그런 맥락에서 6.25전쟁은 한국문학을 고난 속에서 풍요로운 사유의 원천이었고, 거짓이데올로기와 온갖 금기와 맞서면서 전쟁 이후 고착화된 분단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감행하도록 만든 주체적 인식의 원천이었다. 


한국문학에서 6.25전쟁이라는 명제는 전쟁이라는 체험에 깃든 비극에 한정되지 않고 시대와 현실에 범람한 상처의 의미를 민족과 국가권력, 세계냉전 구도로까지 확장시켜 온갖 형태의 비인간적 억압과 지배에 저항하며 인간의 자유와 소망을 신장시키는 경로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전쟁이 남긴 문학적 명제는 “문학텍스트란 그것을 만들어낸 세계의 사회적 정치적 요청에 대한 역사적 계기”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본문, 246- 247쪽에서)



「야행」은 단순히 거리의 창녀, 창녀에 가까운 성적 욕구를 지닌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 속 현실은 경제적 안락과 미래에 대한 행복을 위해 허위를 연기하며 나날의 삶을 살아가는 직장여성의 소묘로 보이지만 강간이라는 돌발적인 사건과 그로 인해 생겨난 충동을 통해 자기구원과 해방의지를 드러내려 한다. 이러한 다중적 함의는 60년대 후반 사회현실과 정치적 맥락을 담아낸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강간이라는 사건에는 국가의 감시체제와 폭력성이 얼마간 개재하는데, 이는 연기하듯 살아가는 일상에서의 허위를 균열내며 내면을 뒤흔든 폭력을 수용소에 갇힌 자들로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야행」은 환유적이며 또한 징후적인 텍스트 읽기가 가능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본문, 299쪽에서) 



이렇듯 납월북 문인들은 남과 북의 문학사에서 배제한 경계인의 국면에서 크게 탈피하지 못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들이 주변인의 표상을 넘어서고 열전 속 분단체제의 공간을 가로질러 어떻게 체제와 이념을 수용하며 문학을 통해 시대현실에 대응하였는지, 그 의의는 무엇인지가 연구자의 주된 관심사가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근대국가와 제도에 의해 폭력적으로 격하된 하위주체로만 호명될 뿐이다. 이들의 문학적 생애와 문학사적 복원에는 ‘근대와 근대국가의 제도적 폭력’과 함께 문학의 근대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개재해야 마땅하다. 


경계 지워진 삼팔선/휴전선 너머의 체제와 공간을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선택하거나 이주해야 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구가 먼저인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들에 대해 희생자의 관점을 개입시키지 않고 시대와 대응한 본래의 맥락과 함의를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해금조치 이후의 문학사적 복원’의 참뜻이 아닐까. 이와 함께, 납월북 문인에 대한 생애 복원에서 대면하게 되는 ‘북한문학’에 대해서도 과연 ‘북한문학이란 무엇인가?’ ‘북한문학 연구는 왜 필요한가?’이라는 해묵은 질문도 재차 꺼내야 한다. 북한문학이 ‘역사적 실재’이자 ‘체제가 용인하고 사회가 선택한 소산’이라는 관점에서 살피는 한편, 남한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근대문학의 전통에서 바라보는 거시적 시야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문 391쪽에서)

 

8    ▪ 영광의 40년, 위대한 도전


『그러나』는 작중 관찰자이자 화자인 김형진이 현산의 과거 행적을 둘러싸고 벌이는 동아시아 지역민들의 소통과 화해를 상상하며 만들어낸 허구적 서사다. 항일독립운동가에게서 친일 경력이 드러나고 친일부역자로 알려진 인물이 독립운동의 동지였던 자료가 뒤늦게 발견되는 과정을 제재로 삼아 ‘식민지의 유죄논리(colonial guilt)’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감행한 작품이다. 역사를 민족의 이름으로 권력화하고 전유하려는 ‘민족적 무죄 논리(national innocence)’는 ‘가해자 민족’ 대 ‘피해자 민족’이라는 대립구도를 넘어서기 위한 성찰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한국사회에 현존하는 ‘식민지의 유죄논리’와 ‘민족적 무죄논리’는 ‘집단적인 유죄의식’과 ‘세습적 희생자 의식(hereditary victimhood)’을 동시에 강요하는 한편, 이를 혈통적 가문주의 안에서 작동시킨다. 작품은 이런 측면에서 역사의 기억을 대서사에서 해방시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개인의 역사로 전환시켜 조망하고자 한다. 작품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개인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과 절망은 과연 무엇이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담아 민족 전체의 고통으로 식민지시기 개인들의 꿈과 의지, 고통과 전락을 추적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추상화하는 역사 전유의 욕망, 기억의 신성화를 통해 세습하는 희생자의식과 결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민족이라는 범주에 갇힌 사고는 민족이라는 범주로만 사고하고 행동할 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러나󰡕는 바로 카스토리디아스가 말하는 ‘자율성의 기획’, 곧 급진적이고 새로운 상상력으로 그 상상력을 이끄는 능력을 회복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셈이다.

(본문 483쪽에서)